역대급 폭염이었던 올해에 육수충인 나는 11월 초까지도 낮에는 반팔을 입고다닐정도로 더웠는데 서울보다 따뜻한 도쿄의 10월초 날씨는 낮에는 역시나 푹푹쪄서 육수마를 시간이 없었다. 무계획에 가깝게 온 여행이라 전날부터 내일은 더 덥다는데 어디로 도망가야 시원할까 고민하다 도쿄와이드패스로 갈수 있는 곳 중에 그나마 시원하고 볼거리가 있는데가 어딜지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나가노현의 가루이자와다. 5월에도 아울렛에 쇼핑하러 오긴했었는데 그땐 쇼핑몰만 찍고와서 나름 피서지로 유명한 관광지인데 시내구경은 하나도 못했기도 하고 산속 고지대라 도쿄보다 시원하겠지 싶어서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진행시킴.

막상 가루이자와에 와 보니 확실히 도쿄보다 시원하긴 한데 그래도 육수가 흐르지 않을 정돈 아니었다. 각종식당과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를 걸으며 구경하다 점심에 뭘먹을지 고민에 빠졌는데 이 동네도 나가노현이다보니 소바가 유명한지 소바집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딱히 땡기진 않고 그 외에는 서양요리집들이 많이 보이는데 것도 그닥...그러다 덴푸라 생각이 나서 덴푸라집을 검색해보니 동네에 덴푸라 전문점이 딱 하나 있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들어가봤다.


들어가보니 이미 서너팀이 식사중이었는데 점심이라 당연히 다들 텐동이나 덴푸라 정식을 먹고 있더라. 그래서인지 내가 바로 제일 비싼 5800엔짜리 가루이자와 코스로 주문하니 사장님이 살짝 놀란모습. 밖에서 봤을땐 그렇게까지 노포감성은 아니었는데 내부는 완전히 쇼와와 헤이세이의 경계선쯤의 세미 레트로한 분위기. 나이든 사장님은 주로 서빙과 계산을 맡고 아들로 추정되는 젊은 셰프님이 안에서 열심히 덴푸라를 튀기고 텐동 그릇에 밥퍼담고 정신없어 보였다.

날이 더워 육수보충을 위해 혹시 생맥주가 있는지 여쭤보니 병맥만 있다해서 이치방시보리로 주문하니 노포감성 돋는 글라스와 함께 나온 병맥주

기본셋팅은 단촐하지만 스타터로 나온 샐러드가 고소하고 상큼한 깨소스덕분에 입맛 살려주고

텐동에 쓰이는 재료들은 이미 손질이 된 상태였고 내가주문한 코스에만 나오는 재료들은 따로 손질들어갔다.

덴푸라 첫점은 당연히 새우다. 고소한 새우다리에 진한 이치방 시보리 한잔 마시니 '바로 이맛이지~'가 절로 나오고.

일본 덴푸라집답게 튀김옷은 바삭딱딱이 아니라 폭신하다. 그 전에 다녀봤던 미슐랭 스타급 덴푸라집들 대비해서 당연히 질감이나 재료의 익힘같은 디테일은 조금 떨어지지만 이정도면 내 덴푸라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기는 충분한 레벨.

껍질이 전혀 거슬리지도 않고 안에 있는 콩의 고소함이 좋다.

덴푸라용 생선의 왕도라고 할 수 있는 보리멸. 담백한 생선이다보니 덴푸라용 재료로 잘 어울린다.

갑자기 손님이 몰려와서 덩달아 나도 서빙이 지체되기에 하릴없이 기다리던 중 주방 안쪽에 보이는 계절메뉴판이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건 바로 송이버섯이다. 그렇잖아도 올해 송이를 한번도 못먹었는데 잘 되었다 싶어 바로 물어보니 품절이라고;;; 무화과나 은어는 딱히 땡기진 않아서 도야마 흰새우만 추가주문을 했다.

가지를 특이하게 손질해서 나왔는데 잘튀긴 가지의 씹을때마다 터져나오는 즙과 단맛은 먹어본 사람은 다 안다.

가리비 관자를 반으로 갈라서 튀겨나왔다.

오크라 튀김은 텐동으로는 몇번 본 것 같은데 덴푸라 코스로는 처음보는듯.

덴푸라집에서 장어라고 하면 당연히 아나고인데 무려 하모가 나왔다. 여기는 완전 내륙지방이라 하모와 딱히 접점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싸고 구하기 쉬운 아나고 대신 하모가 나오는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나야 좋지 뭐. 한마리를 통으로 나오는 아나고 대비 한조각이라 양은 적지만 튼실한 살밥과 단맛은 하모가 당연히 한 수 위다.

껍질콩이 나왔기에 콩은 더 안나올 줄 알았는데 또 나왔다.

시소로 감싼 무늬오징어 튀김. 이건 국내 스시집같은데서도 츠마미로 간간히 나오는 조합. 녹진한 무늬오징어의 살맛 좋고.

아까 추가주문한 흰새우 튀김이 나왔다. 이거 도야마역 1층 상가에서는 990엔에 3배쯤 담아주는데..란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식사는 텐푸라코스 식사의 왕도인 텐차 국물과 함께 입안의 기름기 씻어내기 좋다.

디저트로는 배 두조각 그러고보니 일본에서 배 처음 먹어본듯?
마침 덴푸라라 고프던 참에 가격대비 나쁘지 않은 퀄리티라 만족스러운 식사였는데 나오면서 문득 생각해보니 결국 지출한 비용은 히로시마 텐코혼텐하고 엇비슷한데...라는 생각이 들긴했다. 내년엔 꼭 히로시마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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